모든 사랑은 두 연인이 내심 스스로와 어떤 약속을 하면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상대의 바람직한 일면을 보았으니 못마땅한 일면은 무시하겠다는 다짐이다. 사랑은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이다. 사랑은 인생의 혹독한 추위가 남긴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렇게 마음 속에 온기가 피어날 때 연인의 결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예 무의미하고, 그래서 스스로와의 비밀 약속에 서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의심의 목소리는 침묵시킨다. 나중에 사랑이 시든 뒤 이 비밀 약속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꼭 필요한 어리석음이다. 아름대움에 대한 연인들의 믿음, 즉 진정한 사랑이라는 불가능한 이상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싹튼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