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귀에 대고 소리를 들어보자. 나무가 속삭이는 소리와 소나무의 영혼과 흑연의 중얼거림이 들린다면 어떨까. 물건들의 감정이 느껴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면 말이다. 당장 내 주변만 둘러 보아도 엄청난 수의 물건들에 둘러 싸여 있는 게 현실이다. 그 물건들이 하나씩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나는 그 목소리들을 지휘해서 음악을 만들어낼 것이냐, 아니면 미쳐버릴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인지는 순전히 나한테 달려 있다면 말이다. 루스 오제키의 신작은 바로 그런 영화 같은 순간을 겪고 있는 열네 살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온갖 물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소년 베니와 '책'의 교차 서술로 진행되는 이 독특한 작품은 삶과 사랑에 대해서, 허무와 부조리에 대해서, 그리고 상실과 고통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일련의 사고 이후 사이코로 찍혀 버린 소년은 학교에서 도망쳐 공공도서관에 숨어 들고, 그곳에서 '책'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언젠가 책과 대화를 나누고, 책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된 것이다. 책과 독서의 힘을 믿는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꿈꾸는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엄청난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 두툼한 책이지만, 다시 한번 천천히,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