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건 아마도,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그 말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손보미의 신작에는 집으로 온 아주머니들과 외숙모의 대화를 몰래 듣고, 부모님과 손님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십대 여자아이들이 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치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자기들만의 언어로 떠들어 대지만, 어떤 말들은 그 뜻을 잘 몰랐던 아이들에게도 흔적을 남기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기억 속의 그 언어들로부터 뭔가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 순간부터 아이는 어른들의 세계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은 이 책은 한때 나도 겪어 왔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질투심과 설레임, 수치심과 굴욕감, 난처함과 당황스러움, 비밀과 거짓말, 위험한 장난과 은근한 욕망, 그리고 소문과 괴담... 그 시절 모든 것이 불가능했지만, 반대로 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그 여자아이를 추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 본다. 나이를 먹고 신체적으로 어른이 되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도 한때 십대 소녀였다는, 완전히 잊고 살았던 그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손보미의 작품은 언제나 언제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더 그랬던 것 같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언제나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