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쪽] 작은아버지에게 속았을 당시의 나는, 남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절실히 느끼긴 했지만, 남만 나쁘게 여길 뿐 자신은 그래도 틀림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 사람은 어떻든지 간에 나 하나만은 나무랄 데 없는 인간이란 믿음을 어딘가에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K의 일로 그 믿음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자신도 작은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어질해졌습니다.
[275쪽] 나는 결국 K가 나처럼 오직 혼자라는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갑자기 자살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오싹해졌습니다. K가 걸어간 길을 나도 K와 똑같이 걸어갈 것 같은 예감이 바람처럼 한 번 씩 내 가슴을 스쳐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