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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사라는 단어를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평소에 쓸 필요가 없는 단어라 기억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채 썩어가고 있었겠지요. 아내의 농담을 듣고 비로소 그 단어를 상기했을 때, 나는 아내에게 만약 내가 순사를 한다면 메이지 정신에 순사할 생각이라고 대꾸했습니다. 물론 내 대꾸도 농담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 나는 왠지 낡고 불필요했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담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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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을 결심을 한 지 벌써 열흘도 더 지났는데, 그 기간의 대부분은 이 긴 회고의 글을 남기는 데 썼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처음엔 직접 만나서 얘기해줄 생각이었으나, 쓰다보니 오히려 자신의 모든 걸 더 분명히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쁩니다. 그저 기분에 휩쓸려 이 편지를 쓴 게 아닙니다. 나를 만든 내 과거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의 일부이자 나 이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얘기라서, 과거를 거짓 없이 글로 남겨두려는 내 노력은, 인간을 아는 데 있어서 자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헛수고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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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과거를 선과 악 모두 다른 사람들이 참고로 삼도록 한 셈입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아내만은 예외임을 알아주십시오. 아내에게만은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을 되도록 순백색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니, 내가 죽은 후에라도 아내가 살아 있는 한은, 자네에게만 고백한 나의 비밀로서 모든 걸 가슴속에 간직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