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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나는 K가 죽은 원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머릿속이 온통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지배받은 탓도 있었겠지만, 내 판단은 단순하고도 직선적이었습니다. K는 실로 실연 때문에 죽은 거라고 쉽게 단정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차츰 안정되면서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쉽게 결론지을 일이 아닌 것 같더군요. 현실과 이상의 충돌—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결국 K가 나처럼 오직 혼자라는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갑자기 자살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또 오싹해졌습니다. K가 걸어간 길을 나도 K와 똑같이 걸어갈 것 같은 예감이 바람처럼 한 번씩 내 가슴을 스쳐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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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부터 내 가슴에는 이따금 섬뜩한 그림자가 번득였습니다. 처음에는 뜻하지 않게 외부에서 엄습해왔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전율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부터는 내 마음이 그 무시무시한 번득임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끝내는 외부에서 오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내 가슴 밑바닥에 내재되어 있던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겁니다. 나는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의사에게건 누구에게건 상담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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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인간의 죄라는 것을 깊이 의식했습니다. 그 의식이 나를 매달 K의 묘지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 의식이 장모님의 병간호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이 아내에게 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나는 그 의식 때문에 낯선 행인에게 채찍으로 맞고 싶다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단계를 거치는 사이에, 남에게 맞기보다 스스로 때려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때리기보다도 스스로 죽여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죽은 목숨으로 여기고 살아가자고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