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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 묘비와, 나의 새색시와, 땅 밑에 묻힌 K의 새 유골을 비교하며 운명의 질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후 다시는 아내와 함께 K의 묘에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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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亡友에 대한 그런 감정은 언제까지고 지속되었습니다. 실은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동안 염원해온 결혼마저 불안 속에서 식을 치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제 앞길을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인지라, 어쩌면 이 결혼이 나를 심기일전시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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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남편으로 아침저녁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내 가냘픈 희망은 냉엄한 현실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가도 불현듯 K에게 위협당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가 중간에서 K와 나를 자꾸만 연결시켜 떨어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