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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때까지 우는 것을 잊고 있던 나는 그제야 겨우 슬픔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내 가슴은 그 슬픔으로 인해 얼마나 편안해졌는지 모릅니다. 고통과 공포로 옭매여 있던 내 마음에 물 한 방울의 윤기를 떨어뜨려준 건 그때의 슬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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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젯밤의 끔찍한 광경을 보이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끔찍한 광경을 보이면 그 아름다움이 파괴되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던 것입니다. 공포감이 머리끝까지 달했을 때조차, 나는 그 생각을 도외시하고 행동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죄도 없는데 마구 후려치는 것 같은 불쾌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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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함께 조시가야 주변을 자주 산책하곤 했습니다. K는 그 주변을 아주 맘에 들어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농담삼아 그렇게 좋으면 죽은 다음 여기에 묻어주마고 약속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약속대로 K를 조시가야에 묻어준다고 해서 죗값이 덜해질까보냐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K의 묘 앞에 무릎을 꿇고 다달이 참회의 마음을 되새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