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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추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은 의지가 약하고 결단성이 없어 도저히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까 자살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게 신세를 진 데 대한 감사의 말이 아주 담백하게 그 뒤에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이왕 신세진 김에 사후의 뒤처리도 부탁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니 대신 잘 말해달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고향에는 내가 연락해주길 바란다는 부탁도 있었습니다. 필요한 사항은 모두 한마디씩 쓰여 있었으나 따님의 이름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는 끝까지 읽고 나서, K가 일부러 피했다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은 마지막에 남은 먹으로 쓴 것처럼 보이는, 더 빨리 죽었어야 했는데 왜 여태 살아 있었을까, 라는 의미의 문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