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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생각이 거기에 미친 나는 문득 그가 쓴 ‘각오’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그 두 글자가 묘한 힘으로 내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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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각오’라는 그의 말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곱씹던 중, 나의 흐뭇함은 점차 맥이 빠져 끝내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번 경우도 어쩌면 그에게는 예외가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의혹, 번민, 고뇌를 한번에 해결할 마지막 수단을 K는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빛으로 각오라는 두 글자를 다시 비춰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만일 내가 내려앉은 가슴을 안고, 그가 입에 담은 각오란 말의 뜻을 다시 한번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펴봤더라면 그래도 나았을지 모릅니다. 슬프게도 나는 한쪽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그 말을 오직 K가 따님에게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의미로만 해석했습니다. 그의 각오란 자신의 과단성 있는 성격을 사랑 방면에서 발휘하겠다는 뜻이라고만 확신하고 말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