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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K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거기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해봤습니다. 아주머니와 따님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며 과연 두 사람의 마음이 내 눈에 보이는 대로일까 의심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 가슴속에 장치된 복잡한 기계가 거짓 없이 명료하게 문자반 위의 숫자를 가리키는 시곗바늘 같을 수 있을까 의문도 가졌습니다. 요컨대 똑같은 언행을 두고 요렇게도 받아들이고 저렇게도 받아들인 끝에 가까스로 내버려두기로 낙착을 본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엄밀한 의미에서 낙착이라는 단어는 결코 이런 때 써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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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휘청거리고 있는 걸 발견한 나는, 단칼에 그를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는 점에만 주목했습니다. 그리하여 곧바로 그의 급소를 찾아 달려든 것입니다. 나는 그를 향해 갑자기 엄숙한 태도로 정색했습니다. 물론 책략이었지만, 그런 태도를 취한 만큼 긴장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우스꽝스럽다거나 수치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낄 여유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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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를 나무라기에는 K는 너무나 정직했습니다.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너무나 인품이 선량했던 것입니다. 눈이 뒤집힌 나는 그런 점을 높이 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런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런 점을 역이용해서 그를 쓰러뜨리려고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