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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잘 열리지 않는 입을 통해 따님에 대한 애절한 사랑 고백을 들었을 때의 나를 상상해보십시오. 나는 그의 마술지팡이로 단번에 화석으로 굳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입을 달싹거릴 수조차 없었어요. 그때 나는 두려움의 덩어리가 되었다고 할까 아니면 고통의 덩어리가 되었다고 할까, 어쨌든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돌이나 쇠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식간에 굳어버린 겁니다. 숨을 쉴 탄력성마저 잃어버렸을 정도로 딱딱해져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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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K가 다시 미닫이문을 열고 돌진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아까는 마치 갑작스러운 기습을 만난 꼴이었습니다. K를 상대할 준비고 뭐고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오전에 잃은 것을 이번에는 되찾겠다는 저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눈을 들어 미닫이문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문은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K는 한없이 조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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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나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왜 갑자기 내게 그런 고백을 했는지, 또 어쩌다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의 연정이 간절해졌는지, 그리고 평소의 그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모든 게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