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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현재 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지. 그들만 증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일반적으로 증오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난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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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선생님과 사모님 사이에 오갔던 질문을 나는 혼자 입속으로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편이 먼저 죽는다는 걸 알게 된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할까. 사모님은 어떻게 할까. 선생님도 사모님도 지금 같은 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죽음이 가까워진 아버지를 고향에 두고 자식인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인간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경박성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