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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때 묘하게 들린 것은, ‘가장 행복해야 할 한 쌍’이라는 마지막 말이었다. 선생님은 왜 행복한 한 쌍이라고 단언하지 않고 굳이 행복해야 할 한 쌍이라고 말했을까? 나는 그 말이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특히 그 말을 할 때 어투에 힘이 들어가 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은 과연 행복한 걸까? 아니면 행복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는 내심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도 그때뿐, 이내 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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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 가정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연애의 반쪽만을 상상으로 그려본 데 지나지 않았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연애 뒤에는 무시무시한 비극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비극이 선생님에게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는지, 연애 상대였던 사모님은 전혀 알지 못한다. 사모님은 아직도 모른다. 선생님은 그걸 사모님한테 숨긴 채 죽었다. 사모님의 행복을 파괴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목숨을 파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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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사랑이 주는 만족감을 아는 사람은 좀더 따뜻하게 말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하지만 사랑은 죄악입니다. 그걸 아나요?”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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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정신 차리고 본 결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요”라고 대꾸했을 때의 나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자신감을 선생님은 믿어주지 않았다. “학생은 지금 열을 올리고 있는 건데요. 열이 식으면 싫어질 겁니다. 지금 자네가 나를 그만큼 생각해주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져요. 하지만 그보다도 앞으로 시간이 흐른 후에 자네에게 생길 변화를 생각하면 더욱 부담스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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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싶게 만들죠.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존경을 거부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감당하며 사느니 외로운 현재의 나를 감당하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판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서 이 외로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