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불청객, 박탈 당하는 것. 어디론가 한순간에 떠밀려 나가는 것. p.231
"엄마는 나를 팔아넘겼어요."
그 말을 내뱉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너무 짜릿했고 약간 어지 럽기까지 했다. 이번에야말로 할머니는 삼촌을 비난할 것이고, 삼촌은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를 것이다. 나는 그들이 서로에게 화를 내는 상황을 기꺼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삼촌의 여자-내가 증오해 마지않는 그 여자는 나와 다를 것이다. 그 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녀는 이곳으로부터 우리로부터 달아날 것 이다. 나는 승전고를 울리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p.234
아무리 기다려도 내 승리를 뒷받침해줄 그 어떤 나팔소리도 들 리지 않았고, 화려한 색종이들의 흩날림 같은 것도 없었다. 누구 의 감정도 들끓지 않았고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침묵. 할머니와 삼촌은 그저 두리번두리번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 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판단-불경하 다느니 경박하다느니 경솔하다느니조차 내리지 못하겠다는 듯 이.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것처럼, 내가 무슨 괴상한 소리라도 입 밖에 낸 것처럼. p.235
할머니가 어이없는 일도 다 있다는 투로 웃으며 그렇게 말했을
때, 마침내 나는 낙담했고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순도 백 퍼센트의 패배였다.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 나를 고양시켰던 감정들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자잘하고 성
가신 소금기만을 남긴 채. 나는 알 것 같았다. 주인의 권위는 그 런 식으로 간단하게 부여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가
짜 배신자. 작은 협잡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p.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