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누가 내게 저주를 건단 말인 가 이상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모든 것들이 식은 죽 먹기처럼 여겨졌는데, 갑자기 나를 둘러싼 풍경의 의미가 반전된 것 같았다. 이제 내가 걸어나가는 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그건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진실처럼 느껴졌다. p.109
빠른 속도로 공터로 빠져나 오면서, 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그 와중에도 가방과 셔츠를 챙겨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저주를 깨뜨리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 것 때문에. 아닌가? 그 반대인가? 치밀한 계획이나 용기, 혹은 배포 따위도 없이 도망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저주인가? 세상이 무너 져내릴 것 같던 그 순간에도 나는 챙겨야 하는 걸 조금도 잊지 않 았다. 잊지 않은 것, 그 사실 때문에 굴욕감을 느꼈다.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