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엄마는 야망이 있는 여자였어." 이혼 직후, 아버지는 어 머니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비난하는 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 만 '야망'이라는 단어와 '여자'라는 단어를 한 문장에 둘 때, 아버 지는 영원히 출입을 거부당한 대륙에 몰래 발을 디디려는 사람처 럼 보였다. 긴장되고 조심스럽지만,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한 태도. p.81
사람들은 내가 그 시기에 무척 혼란스러웠거나 상처를 받았으 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느낀 혼란스러움은 사람들이 상상 하는 그런 식은 아니었다. p.83
나는 그녀 앞에 쭈그려앉아서 말했 다. "러시아 발레리나의 사랑을 다룬 책이에요." 나는 일부러 '사 랑'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녀는 손빨래를 멈추지 않은 채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그런 책 에는 아무런 교훈이 없잖니." 나는 순순히 물러났다. p.83
책을 사줄 어른이 남들의 두 배 (물론 정확히 두 배는 아니었다. 1.5배!)인 거나 마찬 가지인데, 왜 원하는 것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왜 이들 은 내가 이렇게 얕은수를 쓰게 만든단 말인가?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바로 이게 내가 느낀 혼란스러움과 상처의 정체였다. 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