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새로운 상황, 가슴이 희망으로 부풀어야 마땅할 그 새로운 상황 쪽으로 생각을 몰아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시들하고 단순하게만 보였고, 그 어떤 일도 중요하고 긴급한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브라이어니가 증언을 번복할 것이고 과거를 다시 쓸 것이다. 유죄인 사람이 무죄가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요즘 같은 때에 죄란 과연 무엇인가?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다 죄가 있고, 누구나 다 죄가 없기도 했다. 증언을 번복하는 것만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증인들의 진술을 받아적고 증거를 모으기에는 인력도, 종이와 펜도, 그리고 인내심과 평화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인들도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알라딘 eBook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