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의 10주기라는 올 2021년에 나는 처음으로 박완서 작가님을 알게 됐다.
그전에 알았어도 뭐 어쨌을 건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서운하고 아쉽다.
이번에 읽은 박완서 작가님의 대표적인 중단편이 실려있는 '대범한 밥상'에는
다행히 전에 읽어봤던 작품은 '아저씨의 훈장' 한 편뿐이라 좋았다.
중단편집의 경우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로 가기 전까지 숨돌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이제 막 한 이야기가 끝났는데, 바로 다음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어디 쉬운가.
그런데 박완서 작가님의 글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바로바로 다음 이야기들로 빠져들 수가 있다는 것이, 읽으면서도 신기했다.
초반에는 글과 나 사이에 낯을 가리느라 조금 데면데면할 만도 한데,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낯을 가릴 새도 없이 바로 그 이야기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 버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또 얼마나 일품인지.
글을 다 읽고 나면 밀려드는 씁쓸함과 복잡함 감정도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 글들이 쓰여진 시기이다.
그 글들이 멀게는 1970년대부터 가까이는 2000년대의 다양한 시기에 쓰여졌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 글들과 오늘의 나 사이에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다.
그것은 박완서 작가님이 얼마나 세상을 날카롭게 파악해서 글을 썼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7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 와중에도 그 바닥에 흐르는 정서나 감정 등은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글로 쓰신 작가님에게 감탄할 뿐이다.
특히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었는데,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내용이 전화 통화 내용이다.
그것도 한쪽의 이야기만이 글에 나타나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다 드러나고 그에 따라 읽는 나의 마음도 흔들린다.
소설의 끝에 가서는 이 서러운 인물을 위해 따라 울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요즘 한창 노벨 문학상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작가를 점찍어 보기도 하고
결국 수상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참 아쉽다.
박완서 작가님도 충분히 자격이 있는 작가님인데 싶어서.
꼭 노벨상이 아니더라도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에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제대로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 하겠지만.
참! 독파 덕분에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김현승 시인의 시 '눈물'의 한 구절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 시 또한 너무나도 가슴 아픈 시인데,
이 소설의 내용과도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더욱 슬퍼진다.
박완서 작가님의 읽어보지 못한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