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내가 던져질 차례였다. 다음 걸음을 내딛는 순간 나는 내가 아주 넓은 강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내 위의 여자들은 이것이 아주 위험한 일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그런데도 다들 이곳을 지나왔다.
맨발이 얼어붙은 보도에 닿은 순간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펼쳐진 것은 낯선 거리뿐이었다. 내 방도 얼음도 서울도 없었다. 나는 또다시 아주 낯선 땅으로 건너온 것이다. 이번에는 나 혼자서. p.273
전화를 끊은 뒤에도 나는 한참 앉아 있었다. 홀로 남은 비밀들은 어디로 가는지 생각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에 쌓여서 누가 그걸 제대로 읽고 받아치 기 전까지는 거기 있을 터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빠르게 흐르는 하늘 아래 쌓인 무수한 편지들을 생각하니 현기증이 일었다. 비틀대며 일어나 새 신발을 신었다. 끈이 질긴 슬리퍼였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주 먼 곳으로 가게 되리란 사실을 알았다. 가장 먼 길로 가다보면 언젠가 다시 자개장 앞에 설 것이란 사실도. 그때까지 편지는 자개장 속에 놓여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움직이지 않고 제 몸 위로 먼지를 쌓으면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자개장이 그들을 붙들 테니까. 무언가 떠나지 않도록 보존 하는 것. 자개장에는 그런 용도도 있다.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