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경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언니가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을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겨울의 산에서 고모는 남방들의 어떠한 공격에도 웃으며 그들 너머의 어둠을 흘끔거렸을 것이다. 산에서 얼어죽을 수도 있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멧돼지들의 송곳니에 치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았으니까. 말 그대로 발을 움직여 갈 수는 있으니까...... 고모는 몇 번이나 조카들과 모닥불가를 박차고 나와 숲을 헤매는 상상을 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무경은 고모의 그 일을 해주었다. 고모는 무경이 그 일을 해주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보았다. 대체 언니는 어떤 눈을 지녔기에 그 나이에 그 마음을 봤을까, 목경은 아찔해지곤 했다. p.41
"단편소설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한 포인트를 융기시킨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 불쑥 솟은 한순간 아래 모든 문장과 장면이 깔리게 되는 거죠. 좀 비민주적이지 않아요?"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