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시작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로. 20년 전 칠장산 아래 전통 장작가마와 집을 짓고 '지요'라는 이름의 도예가로 살아온 지숙경 작가님의 에세이, 숲속의사계절 을 읽었다. 세상은 모든 면에서 좀 더 편리한 방법을 고안해 내고 있지만 일부러 '옛 방식'을 고수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님이 옛 방식으로 만들어낸 도자기 작품들의 그 단아하고 우아한, 담백한 모양이 너무나도 근사했다. 도자기를 굽는 일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좀 더 편리하게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도 될 법한 일에도 부러 옛 방식을 고수하여 고생을 자처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졌다고까지 말하면 조금 오버스러우려나. 하지만 문명과 조금 거리를 두고, 계절의 흐름 속에서 그 풍경과 소리와 향과 맛을 제때에 즐기기 위해 수고스러운 품을 감당해 내는 작가님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에 그 단어만큼 적합한 단어는 없을듯하다.
텃밭과 꽃밭에 씨를 뿌리고 때를 기다린다. 가마에 불을 지피고 또 때를 기다린다. 작가님의 일상은 기다림과 열매 맺음의 반복이다.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그 결과로 아름다운 꽃을, 맛있는 제철 채소로 차린 근사한 식사 시간을, 그리고 근사한 도자기 작품을 손에 쥐는 단순하지만 경이로운 환희의 순간들, 결실의 순간들, 그 순간들마다 느끼셨을 만족감과 성취감. 지난 일 년 지독한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나에게 작가님의 소박한 삶 속의 풍성한 성취의 순간들은 너무나도 부럽고 또 부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성취'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눈 내리는 겨울날 무채색의 따뜻한 고요함(p.23)"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는 일도 하나의 성취이고 "두꺼운 장갑 끼고 털모자 둘러쓴 채 다니는 길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난로에 쓸 장작을 패고 나르는 번거로움을 즐기며 스위치만 누르면 뜨끈뜨끈해지는 보일러의 편리함을 모르지 않지만 더러, 내려놓아야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p.37)"것을 알게 되는 것 역시도, 또 다른 성취라는 것을 작가님이 내 어깨를 도닥이며 속삭이는 듯했다. 당장에 삶의 터전과 방식을 바꿀 수는 없으니 할 수 있는 한의 품을 들여 나만의 사계절을 기다리고, 만끽하며 그렇게 조금씩 자그마한 성취를 손에 쥐어보아야겠다. 언젠가 지요의 단아한 도자기 한 점, 내 곁에 둘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