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는 엄마와 함께 도쿄 여행을 간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곳에 있을수록, 대화할수록 타인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둘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소통하지만, 번번이 엇갈린다.
같은 그림을 봐도 화자는 감탄하며 엄마와 같이 감상을 나누고 싶어 하지만,
엄마는 피곤해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화자의 기대감이 상실되는 순간이다.
레스토랑에서 남자 손님의 일방적인 말을 들어주는 순간 또한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해도 함께하고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다정함과 외로움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화자에게 수영장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만끽하고, 그림을 보며 감정을 느끼는 건,
타인과 외부를 배제한 후 온전히 혼자 생각하며 본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남자 손님과의 대화하는 순간엔 (사실 대화도 아니지만) 남자가 일방적으로 화자에게 말을 토해냄으로써 화자의 시간은 침범되고 수동적인 순간이 된다.
명료히 언어화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이 우리에게 중요한 까닭은,
뇌를 거쳐 언어화, 타자화되기 전이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 혹에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외부와 단절된 채 우리 안에서 온전히 반짝이는 것이다.
책은 이런 반짝이는 감정과 시간을 화자의 이야기를 빗대어 들려주어 잊어버린 감정의 조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서로를 간접적으로 바라 볼 때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책속에서
24p “가끔은 잠시 멈추고 그간 일어난 일을 생각해도 좋은 것 같다고, 어쩌면 슬픔을 생각하는 게 정작 행복을 느끼는 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43p "화가들이 한때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던 것과 비슷하다고, 때로 화가들은 주목하고자 하는 대상을 이같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바라봄으로서 맨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111p "그 사람이 내게서 무언가를 앗아간 기분이었다. 수영장에서 홀로 누리는 행복감과 맞닿는 무엇, 그 그림을 보며 느낀 기분의 언저리에 있는 무엇을, 이런 것들은 소중했고 내게는 아직 신비였는데 이제 그로부터 내가 더 멀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