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물 흐르듯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기리코를 통해 노년의 즐거움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반대로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상실감, 또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낸다. 자기를 포기하고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가는 것,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나 자신을 돌보며 일상을 정직하게 살아내는 것은 어쩌면 더 길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리코는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외롭고 절망적인 순간에 주변의 따뜻한 손길에 구원받는다. 이토록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는 절망적인 미래를 그리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누구나 다 그런 때가 있지 않겠는가. 때때로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그럴 때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다름아닌 선량한 타인들인 것이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에서 사람들의 무관심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더 어두운 곳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에서는 한 인간에게 보내는 주변의 따뜻하고 선한 마음이 그 마음을 받는 이에게 아주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지금은 이 젊은 날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지만 결국은 우리에게도 노년은 온다. 주변 사람들도 다 떠나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살아가야 할까. 이 책에서 기리코는 주변의 이웃들에게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선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들을 기리코에게 이끈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76세라는 나이에도 착실하게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 성실함,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함, 범죄를 모의했으나 끝끝내 버릴 수 없었던 그녀의 선량함. 이 마음들이 모여 좋은 이웃을 불러 모은 게 아닐까. 76세 기리코, 그녀는 결국 스스로를 지켜낸 멋진 할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