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보다 낮은 곳에 있었던 여성의 삶, 그리고 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있었던 흑인의 여성의 삶. 미술사에서 힘 있는 자의 응시를 통해, 그 #시선의불평등 때문에 힘없는 자의 혹은 가지고 있는 힘을 무시당하고 억제당한 자의 삶이 프레임 안에 갇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책, 캐서린 매코맥의 <시선의 불평등>을 읽었다.
남성의 욕망의 틀로 바라본 여성의 몸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비너스, 성모마리아라는 프레임으로부터 19세기 영미권에서의 집안의 천사, 현대의 웨딩화보의 분유 광고로 이어진 이상적 어머니상. 그리고 그 이상적 여성상의 반대편에서 괴물로 표현된 메두사, 릴리스, 스핑크스, 마녀. '이분법적인 여성상 어디에도 '실제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p.252)' 시각예술을 지금, 2023년의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를 묻고 또 묻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내가 그림을 향유하던 권력자들이 프레임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불평등한 시선'을 그저 '외면'해왔음을 깨달았다. 그저 내가 파워 유교 걸이라서 헐벗은 르네상스 그림, 싫어. 정말 싫어. 저 조개 위의 다소곳한 포즈의 비너스, 싫어. 너무 싫어.라고 말해왔다 생각했는데 실은 그 그림들이 품고 있는 관음적 시선을 싫어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은 그 관음적이고 불평등한 시선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기존의 시선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 새로운 시선'까지도 외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특히 마더링이 현대사회에서 또다시 편향된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는지,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뒤로 감추고 미디어에 '부유한 가정의 엄마들의 젊과 멋진 스타일(p.132)'을 팔며 이 편향된 시선이 '자본주의'와 어떻게 결탁하여 어떤 식으로 여성들을 소비능력의 축복으로 세뇌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다양한 작품과 신화 속에서 여성을 어떻게 이분법을 나누어 '정상성'을 주입하였는지, 백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유럽 중심적 아름다움의 이상에 맞추어 흑인을 '지워'왔는지, 지혜롭고 자립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가진 여성이 어떻게 '사냥'당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괴물 여성들은 우리에게 모호함의 힘, 하나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들은 여성들이 쉽게 분류되거나 소속되게 하지 않고 인종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자본주의가 설계한 역할이나 행동을 넘어서서 살 수 있게(p.237)'해 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여성들에게 역서를 만든 남성들의 말을 듣기를 중단(p.238)'하고 여성과 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들로 '전형'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미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는 것이 관람자로서의 나의 역할이자 나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캐서린 매코맥은 잘 알려진 서양미술사의 회화 작품들에서부터 비욘세의 퍼포먼스, 그리고 현대미술에서 의미 있는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까지 소개하며 미술은 여가가 아니라고. 그 안에 숨어있는 정치적 맥락을 읽어내 작품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주입당한' '백인 남성 중심'의 전형성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높게 평가받아온 작품을 다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그 프레임 위에, 새로운 레이어를 추가하여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새롭게 이야기를 해 보자는, 그런 쉽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독파 챌린지의 미션과 함께 미션을 하며 의견을 나눈 다른 챌린지 참가자분들 덕분에 끝까지 잘 읽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