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개정판이 나왔지만, 이전에 구매했던 구판으로 읽었다. 개정판에서는 추가된 내용이 있고 구성이 조금 달라졌지만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은 동일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구매했지만 독파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계속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기에 이번 기회에 읽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나 방향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다른 내용들이 더 많았다. 특히 문학, 문화에 대한 평론 형태가 많아서 (그의 전문분야이기도 하겠지만) 마치 비평집같은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도 여성을 비롯한 인종, 성소수자 등 사회의 억압과 편견에 맞서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저자인 록산 게이는 아이티계 미국인으로서 미국내에서의 여러가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에 페미니즘과 인종차별이 별개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중문화 속에 들어있는 불평등과 편견,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인식 속에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일깨워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얘기된 것은 그나마도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또한 어린시절에 겪었던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저서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룬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이 그에게 성폭행, 강간에 대한 명백한 거부와 반대 입장을 취하게 했으며, 페미니스트가 되게 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쁜'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페미니스트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스스로가 '부족한', '불완전한' 이라는 의미에서 '나쁜'을 의미한다.
그가 그런 불완전한 페미니스트인 이유는 페미니즘 자체가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인정한다. 페미니즘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또 어느 한 방향으로만 갈 수는 없다. 그리고 개개인에게는 또 각자의 방식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그러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페미니즘이 가능할까? 그런 넓은 스펙트럼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이란게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페미니즘 내에서도,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가고,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도 생기는 듯하다. 더구나 그러한 가운데 일부분을 전체로 호도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도 일삼는다.
그가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단순하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쉽지 않았고, 현재도 그러하다. 점진적으로 개선이 있다고는 해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디. 그럼에도 페미니즘운동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고, 이런 시도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글들에 대한 공감과 동의가 확산될 것이고 그러한 공감대 위에서 페미니즘은 더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더이상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필요가 없는 날이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