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블링블링하고 치렁치렁한 그들의 옷과 8등신 몸매, 백옥 같은 피부, 세수하는 것 이외에는 물 한 방울 안 묻혔을 것 같은 섬섬옥수까지 내 맘을 사로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공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뮬란, 포카혼타스 심지어 슈렉의 피오나 공주까지.. 어라.. 이건 내가 상상했던 공주가 아니잖아!! 그런데.. 왜 공주는 늘 내 상상속의 모습이어야 하지?
자, 이번엔 마녀를 상상해보자. 일단 늙었다. 그리고 메부리코를 가지고 있고, 메부리코에는 사마귀 같은 것이 나 있다. 주름은 자글자글하며, 손톱은 바로 멱을 딸 것마냥 길고 날카롭다. 옷은 검은색이고 모자를 쓰고 있다~ 맞는가?
자, 이번에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자애로움 아니면 희생하는 모습?
흑인 엄마는?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모습 정도?
섹쉬한 여자는 어떠한 모습인가? 다리를 이상 야릇하게 꼬고 (허리께 손을 올리고 몸의 한쪽의 굴곡을 강조하는 포즈, ‘베누스 푸디카’라고 부른다) 멍한 시선과 약간 벌린 듯한 입, 살색이 많이 보이는 옷차림 그런 것 아닌가?
“시선의 불평등”은 종교미술을 비롯해서 르네상스부터 현대미술까지, tv 광고와 영화 속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여지고, 재생산되어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비너스, 성모 마리아, 오필리아, 마녀의 이미지는 잊어버려라! 이런 그림들은 보여지는 여성이 아닌 보고 있는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상당히 정치적이란 뜻이다. 그들이 창조한 이미지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지는 것이 아닌,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일 뿐이니까.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이미지들은 여성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과 결부시켜 버린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이미지는 정치적인 시선에 가둬져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에게 여자들이 겪는 고통을 모르고 있을 권리, 생각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한다.
우리는 이제 다르게 봐야만 한다. 그림과 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상품화 되고 있는지,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 말이다. 말이 재해석이지 뻔한 오브제와 뻔한 클리셰는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누구의 시각으로 바라본 성에 대한 이해인가?” 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