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인생의 역사』에서 읽은 이 대목에서 ‘문장’을 ‘공간’으로 치환해 읽는다. 『작별들 순간들』을 읽고 그 ‘공간’이 바로 배수아 작가가 거주하는 오두막과 같은 공간임을 깨달았다. 낯설고 낡은 책들이 쌓여 있는, 발끝은 시리지만 데운 물에 닿는 몸은 잠시나마 따뜻한, 거치른 호밀빵의 살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다른 생활들은 최소화하고 글과 책, 그림과 영화를 최대화한 공간. 내내 읽고 쓰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 노을빛이 비치는 낡은 갈색 공간. 나는 나조차도 모르게 이러한 공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던 공간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황홀했다. ‘황홀하다’라는 말에는 약간의 화려함이 포함되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화려함 없이 황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려하지 않아서 외려 황홀했다. 저자는 오직 글과 자기 자신만이 남을 수 있는 환경에 은둔하기 위해 오두막에 거주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저자는 세상 모든 폭력을 멀리하고자 낡고 깊숙한 오두막에 거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폭력을 지우고 오직 글만, 책만 남기기 위해. 이러한 생각이 든 이유는 책을 읽는 내내 정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상의 거칠고 폭력적인 언어들에 지칠 때면 이 책을 찾아 읽을 것 같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예술가의 이름이나 책이 있고 아름다우려는 속셈 없이 아름다운 문장들이 있으며 소박한 오두막 생활과 숲 안쪽 산책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