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을 자고 일어나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늦봄 또는 초여름…… 풍경을 보니 아무래도 초여름이지 싶었다. 뒷마당의 커다란 느릅나무 이파리들이 풍요롭게 반짝였다. 그 느릅나무 그늘은 그도 전에 경험한 적이 있는 깊이와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공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풀과 이파리와 꽃의 향기로운 냄새에 묵직함이 잔뜩 섞여서 그 향기들을 허공에 묶어두고 있었다. 그는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깊숙이. 긁히는 것 같은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고, 여름의 달콤함이 허파 속에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그 들숨과 함께 자신의 안쪽 깊숙한 곳 어딘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은 뭔가를 멈추게 하고, 그의 머리를 움직일 수 없게 고정해버렸다. 하지만 이내 그 느낌이 사라졌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이런 느낌이구나.
p.386
이디스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그녀를 부르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죽음은 이기적이야. 그는 생각했다. 죽어가는 사람은 혼자만의 순간을 원하지. 아이들처럼. 그는 다시 숨을 쉬었지만, 그의 몸 안에서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차이가 느껴졌다. 자신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지식 같은 것을. 세상 모든 시간이 자신의 것인 양 느긋해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