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대표작이 뭐가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캔터빌의 유령>이라는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는 그가 미스터리나 스릴러, 공포물 작가라고 생각했다. 제목이나 표지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집이었다. 일단 거기에서 한 번 당황. 사실 당황할 것은 없었다. 이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밀리X독파를 계속 해오던 터라 으레 신청했던 것이니 어떤 책을 읽게 되더라도 흥미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꽤 여러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고, 산문시도 있었다. 앞부분의 이야기들은 예상대로 약간 미스터리물의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읽다보니 미스터리보다는 블랙코미디, 풍자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다소 어이없기도 하고, 킥킥거리게 되기도 하는 이야기들. 약간 제임스 조이스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아일랜드 출신 작가여서 그랬을까? (제임스 조이스가 좀 더 이후이기에 그가 오스카 와일드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튼 몇 편씩 묶인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다가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는 '어, 이거 아는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수록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어릴 때 혹은 이후에 동화로 읽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동화치고는 조금 현실적이고 잔인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W.H.씨의 초상화"도 어디선가 단편집으로 읽어본 적이 있었고, "석류나무 집"에 수록된 단편 중에 몇 편도 이미 읽어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들 중 일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작가의 이름과 작품들을 매칭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특히 "석류나무 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이 좋았다. 동화스러우면서도 너무 동화같지는 않은, 오스카 와일드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새드엔딩이고, 그 가운데 자아나 정체성을 찾는 것들도 있지만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교훈들도 곁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성인들에겐 권할만 하겠다.
그가 마지막에 했다는 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 다른 세기가 시작되고, 그러고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건 정말로 영국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될 겁니다." 그러니 "나는 지금 분수에 넘치게 죽어갑니다. 지금껏 분수에 넘치게 살아온 것처럼."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더 많은 작품들을 남길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