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무서운 죄악의 비밀이, 피처럼 붉은 범죄의 표지가 자기는 알 수 없고 누군가는 해독할 수 있는 문자로 자기 손에 적혀 있다니? 도무지 피할 도리가 없단 말인가?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움직이는 체스의 말이나, 도공이 명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그릇보다 하등 나을 게 없는 존재란 말인가? 그의 이성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어떤 비극이 닥쳐오고 있고,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짐을 감당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배우들은 운이 좋다. 그들은 비극에 나올지 희극에 나올지, 그리고 괴로워할지 즐거워할지, 웃을지 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맡도록 강요받고 있다. 길든스턴 같은 사람이 햄릿 역할을 하고, 햄릿 같은 사람이 핼 왕자처럼 농담을 해야 한다.* 세상은 연극 무대이지만, 주어진 배역은 엉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