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름 정원의 오두막은 고향집과 더불어 그의 또다른 서가이기도 하다. 어느 해 그는 정원에 관한 책을 모두 모아 오두막 서가로 옮겼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런 종류를 '정원문학'이라는 장르로 부르고 있다. 오두막 책상은 이집트의 신상들로 가득했다. 나는 담배와 수백 자루의 연필과 화집과 책들과 정원용 가위와 장갑과 말라죽은 로더덴드런 가지가 꽂힌 화병과 쥐덫과 양초와 털양말을 옆으로 치우고 글을 썼다. 전염병이 지속되는 긴 시간 동안 그는 테라스에서 그림을 그렸다. 아크릴물감 튜브가 산을 이루었다. 해가 지면 나는 침대에 기어들어가 추리소설을 읽었다. 그늘진 정원은 싸늘했고 우리는 불을 피웠다. 그곳에서 나는 말 그대로 시간이 정지된 것을 체험했다. 오직 빛과 어둠이, 너울대는 불꽃이, 투야나무 울타리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저녁의 기나긴 황혼이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20~21쪽)
FM의 책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장소, 그곳이 곧 내 공간이다. 그 어떤 문장도 읽은 후에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글. 오직 언어를 통해 재구성된 세계의 황홀한 감각만이 있을 뿐. 그렇다. 나는 FM의 글을 통해 매우 독특한 읽기를 새로이 경험하게 되었다. (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