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엄격한 교리들을 충실히 따르면서 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게 할 뿐인 모호한 침묵속으로 들어가면서 무미건조한 쾌감을 느끼다니 정말이지 기이한 일이었다. 하나의 계명을 어기는 자는 다른 모든 계명을 어기는 죄를 짓는 셈이라고 한 성 야고보의 말씀도 그가 자기 내면의 암흑을 탐색해보기 전까지는 한갓 과장된 구절로만 보였다. 그러나 음욕의 사악한 씨앗에서부터 다른 모든 대죄가 싹트는 것이 사실이었다. 자만심과 타인에 대한 경멸, 부당한 쾌락을 돈으로 사려는 탐욕,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악덕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한 질투, 경건한 이들에 대한 은밀한 중상, 음식을 밝히는 탐욕, 채우지 못한 갈망을 되새길 때 말없이 끓어오르는 분노, 그의 존재가 송두리째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나태의 수렁, 이 모든 죄가 바로 음욕의 씨앗에서 싹튼 것이었다. p.173
한편 그의 소유물인 육체는 무기력함과 수치심에 휩싸여 우두커니 선 채 어두워진 눈으로, 무력하고 곤혹스러워하는 인간적인 눈으로, 응시해야 할 금송아지상을 멍하니 찾고 있었다. 다음날에는 죽음과 심판의 문제가 다뤄져 그의 영혼이 무기력한 절망에서 천천히 꿈틀거리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