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덟시의 우리는 마치 어제를 잊은 것처럼, 단 한 번도 선을 그어본 적 없는 얼굴로 통근 버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안다. 매일 선을 긋고는 찢어버렸던 오늘의 스케치들, 그걸 다 모아둔 커다란 화구통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걸. 그걸 펼치면 평생에 걸친 우리 삶도 울퉁불퉁한 하나의 선으로 나타날 뿐이라는 걸. 그런데 그 그림을 걸 수 있는 크기의 방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매일 밤 그 방의 존재를 잊기 위해 우리는 잠들고 다시 아침에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