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이 쉬워지니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시간과 거리 감각 이 완전히 재편되었고 갈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의 폭이 전 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언제 어디든 향할 수 있다는 기동성은 편리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이 되어주었다. 유용한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는 것,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보태지는 건 꽤 근사한 일이었다. 내게 운전 기술은 곧, 나를 옭아매던 수많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의 확인이었다. pp.194/220
또한 그 누구보다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나 자 신이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는 과정이었다. 마음을 털 어놓을 공간이 있다는 건 사는 게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어준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온통 '슬프다'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채울 때 면 일기장 앞에 우두커니 서보곤 했다.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며 손 가락을 따라 생각의 타래를 펼쳤다. 넌 왜 슬프니, 이유가 뭐니. 그 렇게 하나씩 내게 거는 질문에 따라 속을 털어놓다보면 엉망진창이 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스스로와 나눈 대화에는 나를 세우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으 로 많은 고비를 넘겨왔다. 그건 글쓰기의 또다른 힘인 '치유'에 관 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 일기를 적다보면 그 의미를 십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지치지 않고, 매일 뭐라도 쓰는 것이다. 나의 '뭐라도'는 한 문장까지도 허용한다. 기 준을 하향 조정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계속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pp. 205/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