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이상적인 이웃이란 창문과 같다. 창문을 통해 바람과 볕을 안으로 들이면 공간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가만히 고여 있 는 나를 환기하는 존재 말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다양한 빛깔과 모 양의 창을 갖고 싶다. 그 창을 통해 만난 세상은 좀더 다채로울 테 니까. 그 옛날의 울타리가 없는 집과 같진 않더라도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일을 나누고, 그 힘으로 슬픔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좋겠다. 그렇게 언젠가는 서로서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이들을 만나,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고 싶다. pp.75-76/220
핵심은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과 쾌적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 을 인정하는 것이다. 셋집인지 자가인지도 전혀 상관없다. 명의와 관계없이 사는 동안은 내 집이고, 쾌적한 주거를 얼마든지 누릴 권 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작은 공간이라도 알차게 꾸미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내가 그런 시간을 일찍이 보내봤다면, 그래서 아름다움이 실제로 쾌적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일찍 이 경험했다면 지금보다 덜 고민했을 것 같으니까. pp.95/220
집이 품을 수밖에 없는 생활의 군더더기나 때가 완벽하게 제거된 이미지들을 볼 때마다 위화감이 드는 건 아마도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 반나절만 닦지 않아도 소복하게 내려앉 는 먼지, 돌아서면 생기는 물때, 조금만 정신을 잃으면 여기저기 뒹구는 잡동사니들. 그뿐만이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별별 하자가 갑 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림 같은 장면은 찰나에 불과하다. pp. 95-96/220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이미지 앞에서 그뒤에 가사 노동이 촘촘 하게 얽혀 있다는 걸 기억하려고 한다. 게다가 집 꾸미기에는 필연 적으로 많은 소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좋아 보이는 것들은 대체로 비싸고, 유행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덧없어지기 마련이다. 막연 한 동경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생활을 위해 집이 존재하는 게 아니 라 집을 위해 생활을 갈아넣는 방식은 주객전도라는 걸 모든 정력 을 쏟으며 깨달았다. pp.96/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