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그맘때 나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 을 거라고 막연하게 믿었다. 반짝이고 화려한 일을 동경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어우먼처럼 멋있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첫 단추를 보란 듯이 멋지게 꿰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었다. 첫째, 내가 원하는 건 남들도 원한다. 둘째, 아무리 '있어' 보인대도 일은 일이다. 셋째, 삶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넷째, 처음부터 잘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pp.42/220
무언가를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은 떠나려 애쓴 사람에게만 주어 지는 작은 증표다. 나는 떠나려 했고 되돌아왔다. 그 작은 증표를 등대 삼아 돌아올 수 있었다. 익숙한 거리를 지나가다 유년 시절의 골목과 가게 풍경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돌고 돌아 결국 여기지만, 이곳을 줄곧 사랑해왔기에 남은 미련은 없다고.
언젠가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의 내가 열다섯의 나를 만 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까? 멀리 떠나는 게 꿈이었던 소녀에게 "나중에 부모님하고 겨우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산다"고 하 면 그 애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실망하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산다는 건 자기만의 가치와 기준을 만들어가는 일인데 너는 그걸 해내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 라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뿌리내리며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살 게 되니 기대해도 좋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죽, 어디에 있든 너의 삶을 살면 된다고 말이다. pp.66/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