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희망은 의미 있는 관계 속 어떤 찰나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서툰 예를 들자면, 제게는 저와는 아주 다른 성향을 지닌 오랜 연인이 있는데요. 그와의 인연을 이토록 지속하는 이유가 뭘까, 종종 생각해보곤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와 보낸 시간이 대체로 좋았기 때문은 결코 아니거든요. 인내심에 한계가 와 버겁고 지치는 시간들이 몇 배는 더 많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에 희망을 잃지 않는 건 아마도, 그 수많은 부딪힘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냈던 날카로운 깨달음이나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깊은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유대와 친밀의 순간들을 넘어서, 상대와 함께하는 동안 오래도록 몰랐던 나를 번뜩 감지해버려 오싹했던 찰나, 상대의 몸과 마음이 무너졌을 때 덩달아 고통의 증상을 감각했던 시간들, 몸을 완전히 포개었을 때 마음도 완전히 포개져 우리 사이에 빈 공간은 조금도 없는 듯 느껴졌던 어느 밤 같은… 말하자면 좀 신비로운 순간들 말이에요. 그런 순간들을 모두 합치면 일주일이나 될까 싶긴 한데, 이상하게 그 일주일이 오 년을 지탱하기도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