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향해 돌진하는 햄릿은 부모님들이 보시는 복수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었다. 날 배신하게 만들었던 원흉이 있었고, 그 원흉에게 복수하고자 달려가는 주인공. 다만 복수 드라마랑 다른 점은 주인공의 대척점에 있던 왕의 흉계가 많지 않았다. 격투 때 독을 바르고, 햄릿을 몰아내 죽게 하고자 한 점 외에는 없었다. 왕은 햄릿이 거슬리긴 하지만 그냥 두고 보는 인물인 느낌. 그래서 왕이 좀 더 흉계가 많았으면 더 몰입하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햄릿은 내 아버지와 사랑을 맹세한 어머니가 슬픔도 잠시 바로 아버지를 죽인 사람과 결혼했다는 점에 분노가 상당했고 이에 기반해 여성들을 바라보는 가치관 또한 심하게 망가졌다.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다만 왕비가 햄릿에게 조금이나마 이해시킬 수 있도록 왜 결혼을 다시 했는지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해주었으면 햄릿의 분노가 이 정도는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왕실에서 자란 햄릿이 정치적인 계산을 못했을 리도 없고, 셍떼 부리는 어린아이도 아닌데 그 말이 어려웠을까, 그렇게 시간이 없었을까. 그리고 왕비가 모성애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햄릿의 기이한 행동에 적극적 개입 또한 없는 것도 이상했다. 약간 한 발자국 떨어져서 햄릿을 바라보는 느낌. 왕비가 사실은 햄릿이 낳은 자식이 아니었던 걸까? 왕에겐 다른 왕비가 있었고 그 왕비가 일찍 생을 마감해 어린 햄릿을 현 왕비가 키웠던 것일까? 혹은 햄릿을 강제로 맡게 된 왕비 중 한 명이었던 걸까 그래서 쉽게 애정을 줄 수는 없던 걸까? 상상의 나래가 계속 펼쳐진다.
햄릿을 읽고 햄릿에게 몰두해야 하는데 사실 햄릿 외에 다른 이들에게 더 몰두하게 된 시간이었다. 햄릿의 격렬한 감정이 아직은 덜 와닿아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햄릿에 비해 다른 이들의 정보가 매우 적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다시 한번 더 읽게 된다면 그땐 오롯이 햄릿의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이 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