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눈에 증조부는 이상할 정도로 낙천적으로 보였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사람 같았다.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며 희령에서 어떻게 새 삶을 살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했다. 밥을 많이 먹었고 지나치게 자주 웃었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한참 떠들기를 좋아했다. 증조부의 그런 행동이 단순히 전쟁이 끝나고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할머니만이 아니었다. 증조부는 겉을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어딘가에 금이 간 채로 돌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증조부는 구름 위를 걷다가 진창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고, 그러다가도 다시 구름 위를 걷기를 반복했다. pp.202
편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 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p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