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파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정글북>을 세 번째 읽는 셈이 되었다. 첫 번째는 원서로, 두 번째는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으로 읽었고, 세 번째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세계문학의 북클럽 송년키트 버전이다.
<정글북>은 총 7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데 그 중 세 개가 모글리 이야기, 나머지는 각기 다른 동물들의 이야기다. 실상 제목만 <정글북>이지 무대와 동물들이 너무 다양해서 그냥 <동물의 세계> 라고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건 <정글북>의 원서나 완역본을 읽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구성이라는 것에 당황했을 수도 있을 듯하다. 대부분은 모글리의 이야기만 짐작할 것이고, 그것도 디즈니로 각색된 내용만 알 수도 있을 것이기에. 사실 디즈니가 그런식으로 작품들을 왜곡해놓은 것들이 많다보니 원작과의 차이가 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모글리 시리즈는 단순히 줄거리만 따라가자면 1편과 3편이 이어지는 거라 2편을 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교훈적인 부분은 2편인 '카의 사냥'에 더 많은 듯하다.
내가 원서를 읽고 당시 적어놓은 기록에 의하면, 바기라의 대사는 상당히 고풍스럽다고 했다. 마치 우리말로 하면 사극 느낌? 그런 것을 떠올리며 보니 번역본에서는 아무래도 그러한 느낌을 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문학동네 버전 역시 무난하게 번역된 편이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 저자인 키플링에 대한 선입견 (제국주의자이자 식민정책의 정당화 등)이 있어서 작품에서도 그러한 면이 드러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생각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밑바탕에 살짝 깔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챕터인 <여왕 폐하의 신하들>에서는 대놓고 드러나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해버렸다. 어쩌면 나의 선입견을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글의 법칙'은 과연 제국주의의 논리일까.
동물들을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들(더 정확하게는 어른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일 듯. 어린아이와 동물은 거의 비슷하게 그려지고 있는 반면, 모글리가 찾아간 마을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시어칸이나 몇몇 비열한 동물들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나저나 시어칸은 왜 그리 허망하게 죽는 걸까. 전반적으로 그다지 임팩트있는 모습은 보이지 못한 것 같다. 비정상적인 모습, 입만 살아있고, 제대로 싸우거나 무서운 모습도 아닌 것 같으니, 오죽하면 다들 '덩치만 큰 절음발이 호랑이'라고 놀릴까. 시어칸의 역할은 모글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명목상의 적수였을 따름일까? 이는 제국주의에 희생된 식민지국가들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7편의 단편 중 나는 '하얀 물개'가 가장 좋았다. 뭔가 교훈적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동화로 동화로 들려주기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나 비슷한 작품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화이긴 하지만 단순히 동화는 아니다. 이 작품으로 키플링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듯이, 전반적으로 문학적 수준도 있다. 어찌보면 어른들을 위한 우화 같기도 하다.
아무튼 마지막편 빼곤 전반적으로는 읽기 무난했고, 하마터면 키플링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 할 뻔했지만 그것마저도 제국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순수하게 보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한 번쯤은 완독해 볼만하다. 그래야 자기 나름의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읽는데 그다지 부담도 없는 작품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