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는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허덕이다가 죽음과 더불어 놓여난다는 뜻일까. 비관적이다. 사실 이성복은 내내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고 허무에 빠지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은 없다. 그의 비관주의는 평론가 김현이 명명한 대로 ‘따뜻한 비관주의‘다. 여기서 따뜻하다는 것은 달콤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약하지 않다는 뜻이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무한화서』) 바로 이것이다. 생을싫어할 자격이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여운이 따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