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차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저널리즘만이 아니 라 지식인을 자처하는 많은 이의 숙명이다. 그들은 언제나 발견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발견돼야 할 차이가 발생했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가 달 라질 때에도 여전한 것들이 있다. 큰일이 일어나도 어떤 여전한 것 들은 더 여전해진다. 불행도 새로운 것이 더 값져서, 이미 충분히 나빴던 것들이 더 나빠지는 변화는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내 게 주어진 '사랑과 연애'라는 주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코로나 이후 사랑과 연애는 달라졌는가 여전한가. 아니면 더 여전해지는 방식으로만 달라졌는가. pp.257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는 인터넷으로 신체의 한 계를 초월한 원거리 대면이 가능하게 됐을 때 놀랐고 이를 '원격현 전telepresence'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 변화가 우리를 궁극 적으로는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걸었다. 그에 따르면 우 리에겐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추방할 수 없는 기본적 욕구가 있는데(『인터넷의 철학』), 세계를 최적의 상태로 움켜쥐려는 욕구가 그것이다. (파악이나 장악이라는 말 속에 움켜쥘악'이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원격현전'은 '최적의 움켜쥠' 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화기나 야구공을 몇 번씩 바꿔 쥐듯이, 또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에 서듯이, 우리는 신체를 통해 이 세 계와 최선의 방식으로 만나기를 원하며,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드레이퍼스는 두 최고경영자가 회사 합병을 결정할 정도로 서로를 신뢰하게 되려면 여러 번의 원격회의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 결국 그들의 거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최종적으로 성사될 가 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최적의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가벼운 악수 와 포옹을 해야만 생겨나는 확신, 이것을 '접촉신뢰'라고 부르면 어떨까. 원격현전은 접촉신뢰를 대체하지 못한다. 강의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다. 20년 동안 우리는 바뀌지 않았다. pp.257-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