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화자는 말을 아끼겠노라고 말한다. 말없이도 서러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므로, 떨어져 있었지만 늘 함께였던 나와 내 운명, 그 애증의 세월을 이제는 다 뛰어넘어서, 그저 운명의 얼굴을, 그 얼굴에 새겨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보겠다는 것. 그것은 곧 내 삶의 "그늘과 빛"이기도 할 것이기에. 운명이 눈물을 흘리기라도 한 것일까? 화자가 운명의 '얼룩진 뺨'에 가만히 두손을 얹으면서 이시는 끝난다. 이 만남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보는 일이 지금 이 삶을 위한 것이었듯, 최후의 순간에나 가능할 운명과의 만남을 당겨 상상해보는 것 역시 내가 지금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