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단발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딸에 대한 폭력이라기보다는 시아버지에 대한 폭력이 아니었을까. 무력해진 노인이 의지하고 기고 도는 딸을 빼내기 위한 무자비한 폭력. p.20.
인간이기에 인간이 아니었던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은 정욕보다도 물욕보다도 강하다는 걸 나는 안다. p.78.
우리 식구 말고도 사람 사는 집은 여럿 됐지만 누가 통치하는지 모르는 세상은 빈 거나 마찬가지였다. 빈 세상이 학정보다 더 두려워 사람들은 집 안에 꼭꼭 숨어살았다. p.82.
나의 시골집 마당은 아직도 흙바닥이지만 양회 바닥처럼 단단하다. 내 친구의 어머니 시신까지 하룻밤 사이에 동해바다로 토해낸 폭우도 우리 마당의 견고함을 범하진 못했다. 나의 입과 우리 마당은 동일하다. 둘다 폭력을 삼켰다. 폭력을 삼킨 몸은 목석같이 단단한 것 같지만 자주 아프다.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