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때문에 뒹굴다 깨어나보니 벌 써 저녁일 때의 낭패감과 억울함. 이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를 시인은 묻는다. 그것들은 "혁혁한 업적"을 바라는 마음, 그러 니까 빨리 꿈을 이루고 싶다는 갈급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는 자 기를 제어할 필요를 느낀다. '개'와 '종'과 '달'이 밤이 왔음을 알
려도 당황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pp.227
1연에서 그가 '같은 듯 다른' 세 가지를 함께 말했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싶다. 서둘지 말고, 바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 이 셋은 자주 엉킨다.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은데, 이룬 것이 너무 없어 당황스러울 때, 그때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위험한 때다. 김수영이 걱정한 것도 그것이지 않을까. 빨 리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마음에 지면 나를 잃고 꿈은 왜곡된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않는 마음이란 현실 앞에 의연해지려는 마 음이다.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말이 다. pp.228
이제 그는 어느 봄밤 자신에게 또렷해진 이 '서두르지 않기'의 방법론에 "절제"라는 이름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 스윤리학』에서부터 '절제'란 내 욕망과 관계 맺는 바람직한 방식 이었다. 고대 철학자에게 욕망의 '강도'가 문제라면, 우리의 시인 에게 중요한 것은 욕망의 '속도'다. 이 절제는 개인적·사회적 꿈을 이루기 위한 긴 싸움에 나서려는 자에게 필요한 탁월성 arete 인 것이다. pp.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