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마시는 사람은 희망이 소중하다고 믿는 사람이고, 혼자 마시는 사람은 절망이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일까. 전자가 결국 절 망뿐임을 깨달으면 귀가하다 혼자서 한잔 더 할 것이고, 후자가 끝 내 희망을 포기 못하겠으면 누군가를 불러내 한잔 더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마신 것이 희망이건 절망이건, 자고 일어나면 남아있 는 것은 부끄러움뿐일 때가 있다. 어젯밤 내가 느낀 감정들, 내가 과장해서 나 자신에게 제공한 그것들의 구겨진 포장지만 남아 있 어서다. 대체로 희망과 절망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는 멀리' 있 다. 현실의 대부분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그냥 무명의 시간인 것이다.pp. 226
술 덜 깬 눈에만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 이것이 무슨 대단한 각성의 체험 같은 것은 아닐 테고, 그저 현장검증에 끌려간 자가 어쩔 수 없이 '예, 맞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 같은 것이겠지 만, 여하튼 이 작취미성의 시간만큼 우리가 삶의 진실과 가 까워지는 때도 드물 것이다. 1936년 어느 날의 이상도 그러했으리 라. p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