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이런 터무니없는 무섬증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현관 문에서 그 콩알만한 유리조각을 떼어버리도록 부탁하고 싶었 으나 그런 얘기를 남편이 기분 안 상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이에게 나를 이해시킬 만한 말주변이 나에겐 없었다. 그이 가 부드럽고 따뜻한 눈으로 나를 보아주던 시절 우리 사이엔 말주변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이와 나 사이에 말주변의 필요 성을 다급하게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내 불안과 초조는 비롯됐 다. 나는 어쩌다 남편에게 "여보, 요새 나 좀 이상해요. 괜히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러면 남편은 자못 냉담하게 “흥, 노이로제군, 누가 현대인 아니랄까봐" 했다. 남편은 척 하면 척 하고 빠르게 어떤 등식을 찾아내는 데 능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도대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pp.237
서양 여자들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듯이 이곳 아파트의 여자들은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순전히 남을 닮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나는 이런 닮음에 싫증으로 진저리 를 쳐가면서도 철이네만 있고 우린 없는 세탁기를 위해 콩나 물과 꽁치와 화학조미료와 철이 엄마식 요리법만 가지고 밥상 을 차리고, 철이 엄마는 내가 살림 날 때 올케한테서 선물로 받은 미제 전기 프라이팬을 노골적으로 샘을 내더니, 오로지 그녀의 요리법 하나만 믿고 형편없는 장보기를 하고 있었다. p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