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의 빛나는 착상은 운명을 의인화한 데에, 게다가 수평적으로 평등한 대상으로 설정한 데에 있다. 이 운명은 내 앞에 나타나 그 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 운명이다. 어떻게 이 운명의 멱살을 잡거나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화자는 운명과의 만남을 미리 상상해본다. 제 운명을 껴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pp.156
그것을 니체식으로 '원한 없는 삶'이라 부르고 싶다. 내 삶이 어떤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졌더라도/얼룩지더라도 내 운명을 원망 하지 않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윤동주의 같은 제목의 시에 서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고요히 걸어가겠다는 다짐으로서 의 서시. pp.156-157
그런데 서시란 서문을 대신하는 시이므로 시집 맨 앞에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한강의 「서시」는 시집의 끝에 있는가. 죽음 에 대한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 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므로. 그때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그러나 그건 너무 늦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미리 써야 하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죽 는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시를. p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