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혹시 손때가 묻은 것들에 대한 책임감이라면 그것도 소유욕의 일종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세상에 귀한 거라곤 없으면서 버리기도 쉽지 않은 건, 내 눈앞에서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아 주 없어지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가끔 아궁이가 있는 집이라 면 패 맬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죠. 그것도 생각뿐 이지 요즈음 물건들은 그렇게 쉽게 재도 안 되는 것들이잖아 요. 생때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데없는 세상에 물건들의 목숨은 왜 그렇게 질긴지, 물건들이 미운 건 아마 그 질김 때 문일 거예요.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 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pp.194-195